“결국 AI 시대에 강한 브랜드는 가장 많은 메시지를 생산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고객의 중요한 순간에 발견되고, 선택할 이유가 있으며, 약속을 믿을 수 있고, 지속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증명하는 브랜드다.”
AI가 시장조사부터 콘텐츠 제작, 캠페인 운영까지 마케팅의 거의 모든 영역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그래서 브랜드는 전보다 훨씬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더 많은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콘텐츠의 양이 브랜드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걸까?
‘현대 브랜딩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아커(David Aaker)는 Brand Master Academy와의 대담에서, “AI 시대 브랜드의 경쟁우위는 더 많은 메시지를 생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고객의 의사결정의 맥락에서 더욱 강한 관련성(Relevance)을 확보하는 능력이다” 라고 한다.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기존 시장의 경계를 허물고 있으며, 소셜미디어와 생성형 AI는 콘텐츠의 생산과 확산 속도를 폭발적으로 높였다. 소비자에게 도달되는 메시지는 넘쳐나지만 정작 소비자의 기억에 남고 선택으로 연결되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AI가 이런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음이다.
이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 브랜드는 전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그럴수록 일관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전략이 바뀌고 AI로 인해 실행 방식이 달라지더라도 브랜드의 핵심 의미, 브랜드의 스토리는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AI는 탐색과 생산을 가속하고, 인간은 의미를 해석하고 방향을 결정한다.
AI는 리서치, 데이터 정리, 아이디어 발굴과 콘텐츠 제작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고 창의적 작업을 하는데 있어 그 시작과 속도를 이끈다. 하지만 데이터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며 시장에서 이를 검증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할일이다. AI가 답을 빠르게 만들어줄수록 오히려 인간의 질문과 판단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어떤 문제를 발견하는지, 어떤 가설을 세우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전략의 질이 달라진다.
따라서 AI 시대의 브랜드 경쟁력은 다음과 같은 구조에서 만들어진다.
AI가 속도를 책임진다면 사람은 맥락과 책임을 맡아야 한다. 이것이 브랜드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브랜드다움을 잃지 않는 방법이다. ‘더 좋은 브랜드’가 아니라 ‘고려될 수밖에 없는 브랜드’가 돼야 한다. 이번 강의의 핵심은 브랜드 선호도(Brand Preference)와 브랜드 관련성(Brand Relevance)의 차이다.
브랜드 선호 경쟁은 이미 만들어진 시장 안에서 “우리 브랜드가 경쟁사보다 더 좋다”고 설득하는 방식이다. 더 좋은 품질, 더 좋은 서비스, 더 매력적인 광고를 통해 경쟁 브랜드보다 선택받으려 한다. 하지만 성숙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기존 습관과 관성이 강하다. 제품을 조금 개선하고 광고를 더 많이 집행하더라도 소비자가 익숙한 브랜드를 바꿀 이유를 만들기는 어렵다.
반면 브랜드 관련성 경쟁은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머스트 해브(Must-have)’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카테고리나 서브카테고리를 만드는 전략이다.
아커는 실질적인 성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시장에서 “우리 브랜드가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경쟁자가 아직 갖지 못한 필수 조건을 만들어 경쟁의 기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브랜드 관련성은 단순한 인지도가 아니다.
소비자가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제품을 구매하려는 순간, 그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떠올라야 한다. 동시에 그 브랜드가 약속한 가치를 실제로 제공할 것이라는 신뢰도 형성돼야 한다.
브랜드는 제품을 알리는 수단이 아니라 시장의 선택 기준을 만드는 자산이다
새로운 서브카테고리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비자가 그 카테고리를 떠올릴 때 특정 브랜드가 대표 브랜드로 연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능과 서비스에도 이름을 붙이고, 브랜드만의 고유한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경쟁사가 유사한 기능을 따라 하더라도 최초 브랜드가 그 변화의 대표자이자 기준점으로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아커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서브카테고리를 만들고 대표성을 확보한 사례로 테슬라, 우버, 에어비앤비, 무인양품, 유니클로 등을 제시한다. 이들은 기존 경쟁자보다 조금 더 나은 제품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시장을 바라보는 기준과 선택 방식을 바꿨다.
이 관점에서 브랜딩은 제품을 포장하거나 알리는 사후 활동이 아니다.
브랜딩은 혁신의 의미를 정의하고,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들며, 그 의미를 특정 브랜드가 소유하도록 하는 경영 활동이다.
‘시그니처 프로그램’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번 대담에서 아커는 목적 지향 브랜드와 기업 브랜드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사회적 목적을 말하는 기업은 많다. 하지만 일회성 기부나 단발성 캠페인, 다른 기업과 구분되지 않는 ESG 활동만으로는 브랜드의 차별적 자산이 되기 어렵다.
목적이 브랜드 자산으로 연결되려면 기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분명해야 하고,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아커는 이를 ‘시그니처 소셜 프로그램(Signature Social Program)’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브의 ‘Real Beauty’다. 단순히 아름다움에 관한 광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자기 모습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돕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바클레이스의 ‘Digital Eagles’도 금융회사의 광고만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웠던 신뢰를, 사람들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행동을 통해 다시 구축한 사례다.
잘 설계된 시그니처 프로그램은 사회적 문제 해결과 브랜드 성장을 연결한다.
- 사회적으로 실질적인 영향을 만든다.
- 브랜드의 이미지와 신뢰를 높인다.
- 고객과의 정서적 관계를 강화한다.
- 구성원에게 회사에서 일하는 이유와 자부심을 제공한다.
- 기업이 해당 활동을 지속할 명분과 자원을 확보하게 한다.
목적은 외부 고객에게만 전달되는 메시지가 아니다. 구성원들이 조직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를 의미 있는 활동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강력한 기업 브랜드 자산이기도 하다.
단, 사회적 목적이 실제 행동과 장기적인 약속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비자는 이를 쉽게 자기중심적인 홍보나 그린워싱으로 판단한다. 목적은 말의 크기가 아니라 지속성과 진정성으로 증명해야 한다.
현대 브랜딩을 다시 정리한 ‘5Bs’
아커는 2014년 자신의 여섯 권 분량의 브랜드 연구를 한 권으로 정리한 『Aaker on Branding』을 출간했다. 이후 11년 동안 세 권의 책과 약 200편의 글을 추가로 발표하면서, 변화한 시장을 반영한 두 번째 개정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새롭게 정리된 것이 현대 브랜딩의 5Bs다.
1. Brand Equity|브랜드 자산
현재와 미래의 사업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기업의 핵심 자산이다.
2. Brand Relevance|브랜드 관련성
특정한 고객의 선택 상황에서 브랜드가 발견되고, 신뢰 받으며, 고려되는 힘이다.
3. Brand Image|브랜드 이미지
고객의 머릿속에서 브랜드를 흥미롭고 차별적으로 만드는 연상 구조다.
4. Brand Loyalty|브랜드 충성도
관계와 경험을 통해 반복 구매와 지속적인 고객가치를 만드는 힘이다.
5. Brand Portfolio|브랜드 포트폴리오
기업 브랜드, 제품 브랜드, 서브브랜드, 공동 브랜드와 차별화 자산이 서로의 관련성,
이미지, 충성도를 강화하도록 설계하는 구조다.
브랜드 자산이 중심에 있고, 관련성, 이미지,충성도가 브랜드 자산을 형성한다. 브랜드 포트폴리오는 나머지 요소들이 더 강하게 작동하도록 지원한다. 어느 하나만 개별적으로 관리해서는 강한 브랜드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 5Bs의 핵심이다.
좋은 캠페인은 지금의 성과를 만들면서 미래의 선택 가능성을 높인다.
데이터와 AI의 발전은 즉각 측정할 수 있는 매출, 리드, 전환 성과에 대한 요구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물론 기업은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단기 성과를 이유로 가격 할인에 의존하거나, 일관성 없는 캠페인을 반복하고,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을 훼손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아커는 오늘날 ‘퍼포먼스 마케팅’ 또는 ‘디맨드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단기주의가 다시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단기 매출을 만드는 활동과 브랜드 자산을 축적하는 활동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시너지를 내도록 설계해야 한다.
좋은 캠페인은 지금의 성과를 만들면서도 미래의 선택 가능성을 높인다.
광고를 집행한 후 매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기억, 신뢰, 차별적 연상과 고객 관계가 함께 남아야 한다. 그래야 마케팅비가 매번 소진되는 비용이 아니라 브랜드 자산을 쌓는 투자로 전환된다.
경영진과 마케터가 점검해야 할 다섯 가지 질문
아커의 강의를 우리 기업의 브랜드 전략에 적용한다면 다음 질문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1. 우리는 경쟁사보다 조금 더 낫다고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선택 기준을 만들고 있는가?
2. 고객의 어떤 문제와 구매 상황에서 우리 브랜드가 가장 먼저 떠올라야 하는가?
3. 시장 변화에 맞춰 바꿔야 할 요소와 끝까지 축적해야 할 브랜드 자산을 구분하고 있는가?
4. AI를 단순한 생산성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가, 더 나은 질문과 판단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가?
5. 지금의 마케팅 활동은 단기 성과와 함께 어떤 브랜드 자산을 남기고 있는가?
AI 시대 브랜드 관련성은 더 좋은 브랜드가 아니라 고려할 수 밖에 없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
AI는 브랜드가 콘텐츠를 생산하고 고객에게 도달하는 방식을 빠르게 바꾸어가지만 브랜드 전략의 본질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든 기업이 빠르고 저렴하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될수록, 무엇을 말할 것인지보다 왜 우리가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결국 AI 시대에 강한 브랜드는 가장 많은 메시지를 생산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고객의 중요한 순간에 발견되고, 선택할 이유가 있으며, 약속을 믿을 수 있고, 지속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증명하는 브랜드다.
인지도는 브랜드를 알려주지만, 관련성은 브랜드를 선택지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신뢰와 경험은 그 선택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것이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브랜드 성장의 본질이다.
※ 이 글은 Brand Master Academy의 ‘The Brand Relevance Framework Every Strategist Needs’ 강의를 중심으로, 데이비드 아커의 최신 5Bs 프레임워크를 참고해 요약함.



